Wolfgang Tillmans 볼프강 틸만스

“모든 것이 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1968–)는 2000년 사진가이자 비영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터너상(Turner Prize)을 받았다. 친구와 연인의 초상부터 창가의 과일, 버려진 옷가지, 일식과 콩코드 여객기, 추상 이미지까지 그의 사진에는 좀처럼 한 줄로 묶이지 않는 대상들이 함께 등장한다.

개인의 삶과 동시대 사회 역시 그의 작업 밖에 있지 않았다. HIV 감염 당사자로서 에이즈 위기의 경험을 작품에 담았고,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잔류를 촉구하는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다.

그에게 사진은 특별한 것만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미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과 아직 아무도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을 다시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난간에 걸린 청바지, 클럽에서 키스하는 사람들, 냉소와 희망, 그리고 17년 동안 모아둔 HIV 치료제의 약통. 그의 사진과 삶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에 닿는다.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다고 믿으며 살아가는가.

청바지에도 감동할 권리

Q. 당신의 작업에는 일식과 금괴가 있는가 하면, 난간에 걸린 낡은 청바지도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처음부터 가르지 않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그런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됐나요.

볼프강. 일상의 무언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만이 제 작업의 목적은 아닙니다. 일식의 경이로움이나 금괴의 가치처럼 이미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도, 바닥에 버려진 청바지를 보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가치를 자유롭게 다시 보는 것이죠.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미리 정해두지 않고 대상을 보기를 권합니다. 낡은 청바지 한 벌이 감동을 줄 수 있을지는 각자가 판단하면 됩니다. 그렇게 가능성을 열어두면 시선도 자유로워지고, 눈앞의 대상을 각자 자기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Q. 2003년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서 열린 전시 제목은 《하나가 중요하다면 모든 것이 중요하다(If one thing matters, everything matters)》였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태도와도 맞닿아 있는 제목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고요.

볼프강. 그렇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잠재력’이었어요.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엇이든 중요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죠. 어떤 것이 처음부터 다른 것보다 덜 중요하다고 정해져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모든 것이 같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난간에 걸린 회색 청바지

Q. 1991년, 미술을 공부하던 영국 남부의 해안 도시 본머스(Bournemouth). 학생 아파트 난간에 회색 청바지 한 벌이 걸려 있었습니다. 누구나 지나칠 법한 장면이었지만, 당신에게는 하나의 조각처럼 보였다고요. 그때 무엇이 눈에 들어왔나요.

볼프강. 제게 사진은 조각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눈앞의 입체적인 세계를 한 장의 평면으로 옮기는 일이니까요.

본머스의 학생 아파트에서 난간에 걸린 회색 청바지를 봤을 때, 하나의 조각처럼 보였어요. 그렇다고 난간을 통째로 떼어 갤러리에 가져갈 수는 없잖아요. 사진이라면 그 장면을 한 장에 옮겨둘 수 있습니다. 그때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경제성’을 생각했죠.

청바지의 표면에도 끌렸습니다. 관능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저는 원래 옷에 관심이 많습니다. 옷은 본래 평면이지만 몸을 감싸면서 형태를 얻고, 몸은 다시 직물에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는 매일 옷을 몸에 걸치고 살아가죠. 그만큼 몸과 아주 가까운 사물이기도 합니다.


클럽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이유

Q. 평소 클럽에서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키스하는 사람들을 마주한 순간에는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 장면만은 기록해야겠다고 느낀 이유가 있었나요.

볼프강. 가끔 클럽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제 삶과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가 ‘와, 이건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죠.

인류 문명 1만 년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런 장면이 자유롭게 가능했던 시간은 극히 짧습니다.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사람들은 150년 전에도, 40년 전에도 싸웠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저도 그 장면 안으로 들어가 직접 목격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집니다.

물론 그러려면 키스하고 있는 두 게이 남성의 얼굴에 플래시를 터뜨려야 하죠.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당혹스러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제가 바깥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공간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끔찍하다. 그래도 희망한다

Q. 당신은 스스로를 희망적인 사람이라 말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희망’이란 무엇인가요.

볼프강. 저는 희망적인 사람이지만 모든 일이 완벽해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완벽함도 성공도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니까요. 기대를 지나치게 높이면 결국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저 가능한 한 공정하게 보려고 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과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냉소주의에 시간을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제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예전에 한 남자가 입은 티셔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누구도 내려다보지 마라.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는 게 아니라면.”
“Don’t look down on anybody … unless you are helping them up.”

1. sportflecken, Wolfgang Tillmans, 1996
2. Kae Tempest, Wolfgang Tillmans, 2021
3. still life, New York, Wolfgang Tillmans, 2001

Q. 에이즈 위기 속에서 성장한 경험을 생각하면, 당신이 말하는 희망은 단순한 낙관과는 다르게 들립니다.

볼프강. 인간은 끔찍합니다. 타인의 삶을 망치는 방식은 끊임없이 생겨납니다. 그러다 보면 ‘과연 우리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묻게 되죠.

그래도 저는 희망을 택합니다. 희망하지 않는 것 자체가 희망 없는 상태를 만들어버리니까요.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이죠.

저는 에이즈 위기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과 생명의 위협이 맞닿아 있던 시대였어요. 로맨스가 당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었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춤을 췄습니다. 계속 살아갔어요.

비극 속에서도 기쁨과 행복은 있었습니다. 저는 비극이 전혀 없는 행복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삶에는 비극이 있고, 동시에 기쁨과 환희도 있습니다. 그 만족이 정직한 것이라면, 그 안에는 겸손함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7년 치 약통

Q. 〈17년 치 약(17 Years’ Supply)〉(2014)은 오랫동안 복용해 온 HIV 치료제의 빈 약통을 한데 모아 찍은 사진입니다. 처음부터 작품으로 만들 생각으로 모은 것은 아니었다고요.

볼프강. 1984년, 열여섯 살 때 학교 밖에서 처음 남자와 섹스를 했습니다. 바로 그달, 에이즈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 표지에 처음 등장했어요. 십 대 시절부터 막 성인이 될 때까지 늘 두려웠고,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HIV 검사를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딜레마였습니다. 양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검사를 받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으니까요.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1996년 병용 치료제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 뒤, 연인이자 화가였던 요헨 클레인(Jochen Klein)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만에 저 역시 HIV 양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요헨이 살아 있을 때 저는 이제 치료제가 있으니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료제의 도움을 받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

볼프강. 저는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파란색, 자줏빛, 흰색 알약들을 볼 때마다 경외심을 느꼈어요.

‘이건 도대체 뭘까. 이 작은 알약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그 작은 약들이 레이저 유도 무기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며 바이러스가 작동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에 대한 감사함도 있었고, 제 성격에 조금 집착적인 면도 있어서 1997년부터 빈 약통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았습니다. 그러다 2014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약통을 커다란 상자 하나에 모두 담았죠.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지난 17년 동안 내가 먹어온 약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라는 것을요.

이 실제 물건들이 제가 지금 여기 존재할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런던에서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를 통해 처방받은 약들이라 상자와 약통에는 제 이름도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찍은 사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결국 공개했습니다.

17년이라는 시간이 쌓인 뒤, 그것을 사진으로 만들어 벽에 거는 일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게는 제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과 아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작품입니다.

하나를 가질 수 있다면

Q. 세상의 모든 미술 작품 가운데 단 한 점만 소장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어요.

볼프강.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누가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을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요.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입니다.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작가는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입니다.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III, Barnett Newman, 1967-8


[Editor’s Note]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과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 1904–1980)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한 화가들이다. 두 사람 모두 거대한 화면과 강한 색을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삼았다.

특히 뉴먼의 〈누가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을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는 빨강·노랑·파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색을 거대한 화면에 펼쳐놓은 작품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 색을 미술의 규칙이나 이론으로 먼저 판단하기보다, 눈앞의 색 자체를 직접 보고 느끼기를 바랐다.

틸만스 역시 이번 인터뷰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식과 금괴, 버려진 청바지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그의 태도와, 익숙한 색을 다시 보게 만들려 했던 뉴먼 사이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사람과 사물뿐 아니라 추상과 색까지 오랫동안 탐구해온 틸만스의 작업을 생각하면, 인터뷰 마지막에 두 화가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그리 뜻밖의 일은 아니다.


인터뷰 진행

러셀 토비(Russell Tovey)
영국 배우·미술 컬렉터·큐레이터. 2021년 터너상(Turner Prize) 심사위원을 맡았다.

로버트 다이아먼트(Robert Diament)
영국 갤러리스트·미술기획자. 칼 프리드먼 갤러리(Carl Freedman Gallery)와 카운터 에디션스(Counter Editions)의 디렉터로 활동했다.